해외간호사 활약 (Global)

해외간호사 활약 (Global)

젖과 꿀이 넘쳐 흐르는 , 노르웨이!

처음에 노르웨이 땅과 환경은 저에게는 지구에서 떨어져 있는 저 하늘속의   달나라 같은 환경이었습니다. 막막한 캄탐한 우주 한 공간에  막연히 홀로 있었던 환경 같았지만 그러나 너무나 감사한것은 하나님께서 저를 안고 계셨고 그런 하나님을 알아가게  하신 땅입니다. 그리고 항상 밤과 낮으로 저를 꼭 지켜주셨고 제가 어둔 캄캄한 깊이도 짐작 못하는 밤 바다를 건널때에는 그 검은 바다에 빠지기 가지 한  저를 건지어 주셨고 젖은 옷에 하나님의 외토를 벗어 입혀주시고 돌다리 하나 하나씩 놓아 주시며 한번도 저의 손을 절대 놓지 않으시고 건너게 해주신 땅입니다. 하나님은 저보다 저를 지켜보시며 더 아프셨을 것입니다. 자녀가 힘든 어두운 산길을 헤치며 갈때 편히 주무실 부모 어디있겠습니까! 하나님은 더 아프시고 가여웠을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맘은 사랑이시고 그 사랑의 맘을 받아가며 걸어온 이 순간은 다 감사뿐입니다. 제게 하나님이 없었다면 전 이런 감사를 드릴 행복한 삶을 살지 못했을것입니다. 노르웨이에서 극복하고 승리할수 있었던 것은 하나도 둘도 천도 만도 ..다 하나님 덕분이십니다!

이제 저는 하나님은 하나님의 소망을 계획을 하나님의 성령을 받아 그분의 뜻을 아는 자들을 통해서 친히 이루어 나가고 계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모든것이 영광이고 은혜이고 경배드릴수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저 같은 돌덩어리 같은 무지한 자도 이만큼 변화 시키시고 이런 자를 통해서도 석사라는 과정 까지 이루어주신 능력의 분이심을 더 많은 사람들과 간호사들이 알아서 하나님과 함께 화합하여 그분의 능력주심으로 이룰수 있는 희망의 메세지를 전하고 싶습니다. 이런 메세지가 전하여져서 그들의 영혼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계획에 제게 조금이나마 하나님의 듯에 쓰임되는 올바른 양이 되길 기도해주세요!

제 안에 주신 성경말씀과 성령하나님이시면 어떤 상황이어도 완벽한 환경입니다. 제가 완벽해서가 아니고 제가 너무나 부족해도…하나님 한분으로 전 완벽한 환경을 이미 받은자임을 하나님께 고백드립니다.

한국인은 부지런하고 빠른 민족임을 해외에서 더 느꼈습니다. 그리고 한국기독교 간호사들은 기도하는 민족이고 그 기도들을 위한 열정과 인내가 탁월한 민족이기에 한국간호는 급속적인 발전을 했고 이젠 세계를 리더하는 창의적인 간호를 하는 나라임을 느낍니다. 제 나라 간호사님들이  그래서 더욱 자랑스럽고 감사드립니다. 이제 세계로 퍼져나가 뛰고 있는 간호사들의 활동이 더욱더 글로벌 간호시대에 각 국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세계간호의 리더로 거듭나고 한국간호는 세계에서 배울것이 많고 가르치는 나라로 거듭날 것임을 확신합니다. 재외간호사들의 패러다임이 바뀌어 갔습니다.

돈이 없어 나라 경제를 살리기 위해 해외에 갔던 간호사의 패러다임에서

이제 한국은 다른나라 간호사들을 가르치는 리더간호국으로 거듭남을 느끼고

제 고국의 멋진 기반을 마련해주신 먼저 선구자의 역활을 하신 모든 선배 간호사님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재외한인간호사님을 만남을 통해 저는 더욱더 큰 동기부여를 받았고 용기를 받았습니다. 이미 먼저 미국으로 진출하신 한국간호사님들을 뵙고 그분들의 활동을 들을수 있었던것은 제겐 너무나 큰 무지개를 보는것  같아 보였습니다.  저는 미국에서 근무하시고 공부하신 선배님들의 학문과 경험들을 더 알고 싶은 소망이 생겼습니다. 그곳은 해외 선구자 간호사들의 나라이기에 배울것이 많을것이라 생각됩니다. 홀로 가면 멀리 못가고 그러나 여럿이 가면 오래 더 멀리 간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몸은 떨어져 있으나 그러나 한 영혼으로 한 가슴으로 함께 하며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또 노력하겠습니다. 용기와 격려 늘 주시어 감사드립니다!

노르웨이에 이 작은 한 홀씨로 보내시어 심어주시고 자라게 해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드리며 재외한국간호사님들의 승리를 위하여 노르웨이에서 한 재외간호사 기도드립니다.

개인적으로 한국간호사들을 통해 더욱더 하나님의 영광이 이 유럽에도 기독간호사들을 통해서 더욱더 퍼지시어 영광 받으시길 소망하며 기도드립니다.

감사드립니다.

 

 

 

앞으로의 개인적인 간호사로서의 소망

  1.       한국간호사의 노르웨이 간호사 취득 과정을 위한 교육 과정 구축
  2.        한국과 노르웨이의 간호대학과의  학생들의 교류를 통한 다양한 경험을 체험할수 있는 기회 구축. 예, 노인간호 연수과정  또는 노인간호실습.
  3.        한국간호사들의  예술과 문화교류를 통한 한국 간호사의 문화와 전문성을 알리는  시너지 효과
  4.       노르웨이 신규 간호사와 비전문직 직원들의 오리엔테이션 교육 시스템  발전 구축
  5.        한국간호사들과 외국간호사들에게 필요한 실질업무적인 노르웨이 언어 교육자료 구축과 지속적인 발전을 위한 연구.
  6.        외국간호사들을 위한 코칭과 엠파워먼트 그리고 노르웨이 업무 문화교육 구축.
  7.        스칸디나비아국가의  노인사회복지 시스템 연수 구축
  8.        한국 간호대학의 간호학생들의 동기부여를 위한 강의.
  9.        노르웨이 내에 근무하는 한국간호사들의 근무언어 실력 함양을 위한 자료 만들기.
  10. 10. 노르웨이 간호사의 리더쉽 구축을 위한 정보모집과 시스템 구축
  11. 11. 재외한인간호사를 통한 미국간호사들의 활동과 경험 정보수집과 지속적인 교육을 통한 발전

에볼라 환자 돕기 자선공연

뷰스케르드 베스트폴드 대학 석사  입학과 졸업 2009 – 2014년

노르웨이 온지 5년만에 석사과정에 입학하였습니다. 뷰스케루드 베스트폴드 대학은 제가 이민가방 들고 처음 도착하여 언어 연수와 노르웨이 간호사자격증 취득과정을 한 대학교이기도 합니다. 12년전 한 단어도 제대로 뜻을 몰라서 노르웨이어  언어선생님의 질문에 멍하게 바라만 보았던 그 자리였습니다. 감회는 그래서 더 컸고 특별했습니다. 그런 무지의 사람이 석사과정의 입학 자체는 제게는 기적이었습니다. 또한 저로서는 사실 불가능 할것이라는  과정의 시작이었습니다. 제가 겪은것은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습니다. 첫날 부터 졸업하는 날 까지 단 한순간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도우심을 예비하심을 간증 안할래 안할수가 없습니다. 알 사탕 처럼 연결되게 하시는 그 인도하심속에 전 그저 순종하였고 그 열매가 결국엔 열리게 하셨습니다.

10여년간의 건강증진학의 석사배출을 하고 있는 이 대학의 통계로 그간 석사들은 30프로의 졸업률이 나왔다고 하시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그중에 외국간호사로서 외국인 간호사들을 대상으로 쓴 논문은 노르웨이에서 처음이기에 저에게 너무나 많으신 교수님들께서 격려와 기쁨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개인의 기쁨이 아니고 한국간호사로서의 기쁨을 나누었습니다.

실력이 배출하는것이 아니고 인내와 꿈이 배출한고 했습니다. 저의 실력은 논문을 쓸수 없는 실력입니다. 그러나 저의 꿈은 그 실력과 상관없이 멈추지 않게 하셨고 그리고 이루게 하셨습니다. 이 논문은 외국간호사들의 더 나아가 노르웨이 간호사들의 업무의 질과 능력을 향상하여 노르웨이 환자들에게 더 낳은 돌봄을 제공할수 있는 기본적인 시스템을 인프라구성을 하는데 기여되는 첫 단추가 될것입니다. 누군가는 이 문을 열어야했습니다.  그것이 저의 꿈이었고 소명이었습니다. 누군가는 열어야 할 이 문을 하나님께서 열어 주셨습니다. 이제 노르웨이에 온 외국간호사들은  그들의 잠재력이 언어라는 장벽에 막혀서 주져 앉는 상황들을 넘어서서 언어가 안되더라도 그들안에 간호사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전문성을 키울수 있는 길을 열게 될것입니다. 약한자들이 아니고 환자들을 위해서 그리고 동료들의 좋은 업무환경들을 위해서 강한자들로 거듭나서 행복하고 기쁘게 새 땅, 노르웨이에서 근무할수 있는 다리 역활을 할수 있게 되길 소망합니다.

석사 연구 발표 2015년

석사 후보생들 앞에서 저흰 세레모니를 받으며 그들에게 용기와 격려를 주었습니다.

발표시에 컴푸터 앞에 저와 함께 한 글을 적어 갔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넉넉히 이길수 있느니라! » 이 말씀이  이루어주셨습니다.

 

항상 격려해주시고 가르쳐주시는 베릿 교수님

                                                                                              

뷰스케루드 베스트폴드 대학교 도서관                                뷰스케루드 베스트폴드 대학 간호과 앞                                           

집 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했던 공간이었습니다.

 

 

한국문화 알리기 행사

지역사회내에서의 긍적적인 시민으로서의 역활 경험

노르웨이는 다문화권입니다. 한지역에 수십개국의 인종이 섞여 있으며 저희 노인병원만해도 20여개국의 동료들이 근무를 합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문화의 이해를 통한 존중과 화합은 큰 이슈이고 당명한 실질적인 과제입니다. 예술과 문화는 서로를 이해하고 화합하는데 아주 특별한 영향력을 미치며 효과를 높이는 수단이라 봅니다. 음악은 글로벌의 소통을 가장 탁월하게 하며 정신적인 건강과 증진의 꽃을 피우는 멋진 도구라고 봅니다.

근무지인 병원을 넘어서서 지역내의 문화와 환경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길 원해서  노르웨이교회내세서  2009년경  국제 합창단을 결성했고 그들의 그들의 모국어로 찬양하고 노래하고 그들의 기쁨과 슬픔을 나눌수 있고 , 그들의 꿈을 기도할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습니다.

이 구룹은 자기 자신들에게 힘이 되었고 또한 그들을 지켜보시는 노르웨이분들에게도 신선한 새로운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보내진 땅에서 모인 이방인들의 열정에 찬사를 보내며 저희들은 도움을 기대하고 받기만하는 사람들이 아닌,  이제 도움을 나누어 주는 사람들로 노래를 합니다.

 

노르웨이 간호사 역활로서의 경험

한국간호사로서의 한국병원에서의 노아우와 경험, 지식들은 현장에서 당연히 너무나 큰 절대적인 도움이 되었었습니다. 한국병원에서 근무할때 수술실과 산부인과를 빼고는 다 경험이 쌓아지고 지식이 싸아진 저에게는 언어 문제외에는 사실 그렇게 어렵지 않은 현장 업무였습니다. 한국병원에 근무할때 심장내과 병동에 근무하면 심전도 책을 사서 심전도를 리딩을 할수 있을 때 까지 공부했었고 소화기 내과에 가면 내시경을 직접 가서 환자들이 어떻게 검사하고 어떤 고통을 격나 보고, 이런 지식들을 그들에게 간호사가 무엇을 설명해드리고 어떤 관찰을 해야 하는지를 실질적으로 알수 있었기에 휴일에 자주 병원에 나가 스스로 모든 것을 간접체험을 했었습니다. 신경외과 병동에 근무를 하며 당연히 혈관조영실에 가서 의사들이 어떻게 환자를 검사하고 그 결과는 어떻게 리딩되며 어떤 수술들을 하는지 등 처음부터 끝 까지 알아 환자분들에게 가장 적합한 설명과 정보를 들이는것이 중요한 간호의 일부임을 느끼며 스스로 그렇게 주어진 일만하는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포괄적인 간호지식을 좋아했었습니다.

그런 저의 간호사의 자세들이 노르웨이의 간호사의 역활을 하는데 너무나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저는 노르웨이 간호사 역활들이 사실 한국에서 근무할때 보다 너무나 제겐 더 재미있었고 맞았었습니다. 이곳의 간호사들은 의사와 의논하고 대화하며 치료방향을 같이 정하고 간호사의 관찰력에 의지하여 의사는 치료를 결정하기에 간호사의 올바른 분석과 전달 보고는 너무나 중요한 핵심업무입니다. 의사도 간호사의 전문성을 존중하기에 수평적인 관계의 업무를 한다고 봅니다.  간호사의 의견과 판단이 환자와 보호자에게도 크게 중요합니다. 간호사는 간호자, 정보자, 분석자, 관찰자, 교육자, 근무지의 업무환경 증진자, 업무개발자, 등등의 다양한 역활을 할수 있는 매력적인 환경이었습니다. 한국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환자들과 보낼수 있고 무엇보다 저는 업무환경과 효과적인 간호 발전에 열정이 있어서 이런것들 스스로 분석하고 답을 찿는것을 노르웨이에서도 근무외에 꾸준히 했었습니다. 각 환자를 위한 간호 팀을 구성하여 예방과 증진 간호에 좀더 체계적인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이런 모든것들이 다 싸여서 석사 학문의 지식을 쌓을수 있는 문을 열어 주시었고 더욱더 체계적으로 할수 있는 지식을 배우는데는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환자들을 위한 직접 간접적인 간호시스템과 교육시스템을 통한 질 높은 간호를 창출해 내는 것은 제 심장을 흥분하게 하는 것이고 이 일을 하는데는 끊임없는 열정이 생겨나는것을 느낍니다. 그리고 가치있는 일이고 제게 행복감을 주는 일입니다. 이런 일을 할수 있는 간호사여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한국을 알리는 개인 홍보 문화원의 자부심

한국이라는 나라는  노르웨이에서는 전쟁나라, 입양아를 많이 보내는 나라, 남과 북이 갈라져 있는 나라로 더 알려져 있는 분위기였습니다. 여러모로 발전되어 있는 한국을 알리고 싶었고 이것을 계기로 지역사회에 사는 한국인들에게도 특히 한국 학생들에게 격려와 기상을 세우고 싶은 소망으로 한국 문화행사를주체했었습니다. 지역의 기관장님들,  학교장님들, 도서관관계자, 병원관계자분들, 변호사, 입양아등등을 초대하여  한국문화를 2007년도에 알리는데 역활을 했었습니다.  참가자들도 초대되어 오셨던 분들도 너무나 같이 큰 감동을 받았던 잊을수 없었던 추억입니다.

이렇듯 한국 재외간호사들은 간호사로만이 아니라 나아가서는 움직이는  한국 홍보를 하는 작은 민간 대사원, 홍보원들의역활도 한다고 봅니다. 이 행사가 끝난후 지역도서관에는  전쟁나라, 가난한 나라 한국에 관한 책자들이 많았는데 그자리에  이제는 발전된 도약한 한국의 책자들로 도서관에서  직접 교체해주셨습니다.

 

 

한국에서 주신 올해의 전문 대학인 상

2007년 부터 2009간  저는 이런 먼저 노르웨이를 경험한 경험을 통해서 18명의 한국간호사에게 노르웨이 간호사 면허증 취득을 할수 있도록   노르웨이 대학교 교수님과 기여를 할수 있었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한국간호사들의 노르웨이 간호사 면허 취득과정에 기여한 공로로 «올해의 전문대학인 상»을 2008년도에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에서 노르웨이에 근무하는 저에게 까지 주셨습니다.  이것은 제게 더욱더 한 개인이 아닌 한국을 대표하는 한 모델로 이 노르웨이에서 살아 가는 각오를 더욱더 하게 해 주시는 동기부여가 되었었던것 같습니다.

 

한국노인간호사회의의 간호사들의 노르웨이 노인사회복지 시스템 및 노인병원 연수 및 뷰스케루드 베스트폴드 대학교 방문과 교수님의 …

한국노인간호사협회팀들의 노르웨이 병원 방문기사,  노인학과 시그나 교수님의 이론 강의 및 노인병원 연수지 방문 주선과 통역

스톡께 노인병원 방문시 한국간호사들도노르웨이 간호사들도눈물을 흘렸습니다. 우린 간호사다! 라는그 공통된 정체성을느끼며  서로들에게환자들을 위해 더욱더노력하자는 격려를 주고 받았던 감동스런연수였습니다.

 

인드레 하븐 노인병원 방문시

한국 노인협회 회장님의 감사선물 전달을 받은 노인병원의 전문간호사 팀은 한국 간호사들의 독특한 간호향기를느꼈다는 찬사를 많이 하셨습니다.

연수를 넘어서 한국간호사들의 환자를 위한 노력과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주신 연수팀에게 저도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던 기회였습니다. 한국 간호사들의 노르웨이 연수시 저를 도와주었던 저의 간호학생 토나도 많은것을 경험한  연수였습니다.

 

 

 

교육 환경을 위한 병원이동

그후 저를 노르웨이간호사 자격증을 따기 위한 노인병원 실습기간중에  저의 실습담당간호사이셨던 천사 같은 엘리자벳 간호사님이 실습을 마친후 헤어진 저를 그후 1년이 지난 어느날 저를 찿아 카드를 주셨고 저는 그분의 추천으로 지금의 병원에 근무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병원은 제가 처음 언어수업과 간호사 자젹증취득 과정을 한 뷰스케루드 베스트폴드 간호대학교 근처에 있었습니다.

언제나 항상 벙어리 같았던 저를 칭찬해주시고 격려해주시고 믿어주시며 노르웨이 간호사가 될수 있게 기회를 주신엄마 같으셨던 엘리자벳 간호사님!

이분에게 받은 사랑을 노르웨이에 다시 되돌려주고 갚기엔 아직도 너무나 멀었습니다. 너무나 많은 사랑을 환자와 동료와 보호자들에게 그리고 제게도 주신 롤모델이십니다. 그분은 살아 있는 천사 같으신 최고의 간호스승이셨습니다.

동료들에게도 너무나 많은 사랑을 받았고 배웠습니다. 노르웨이 사람들은 거의 착해서 인간적인 갈등등은 거의 없었고  칭찬을 하는 삶과 업무 문화여서 저도                              

칭찬하는것을 배울수 있었습니다. 기다려주는 문화여서 스트레스도 외부에서주는 스트레스는 거의 없었습니다. 이런 선한 업무 환경이 제겐 너무나 큰 도움이 되었고 정착할수 있었던 큰 조건이 되었었습니다.

소망과 꿈을 언제나 다 예비하시고 준비해주식고 또한 이루기 까지 해 주시는 경이로운 하나님을 하나님을 전혀 몰랐던 저에게 그렇게 하나님은 더욱더하나씩 가르쳐주시고 체험시켜 주시기 시작했습니다.

 

노르웨이의 언어 장벽

언어는 제 노력과 상대적으로 나아지지는 않았습니다. 언어를 무슨 뜻인지를 이해할수 도 없었던것이 한국 노르웨이어 사전도 없었고, 인터넷 사전도 없었고, 노르웨이어를 이해시킬수 있었던 한국사람도 한명도 없었기에 너무나 막염한 언어공부를 한것입니다. 노르웨이 한단어를 찿기위해 영어단어를 먼저 찿아서 한국사전으로 다시 찿아야 한단어의 뜻을 알수가 있었고 때론 이것도 맞지가 않아 이해가 잘 않될때는 막연했었지만 그런 시간들도 다 쌓여서 지금이 있는것 갔습니다. 노르웨이어를 노르웨이 사람에게 배운 그 수업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막연했던것 같습니다. 이제는  그때 몰랐던 그 단어들을 보면서 웃을수 있는 추억이 되었습니다.

영어도 잘 모르는 저는 영어를 쓰는 나라가 아니고 노르웨이어를 쓴다는 말에 매력을 느꼈고 도전심이 생겼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시작한 언어공부에서 천부적으로 언어력이 약한  저의 언어 습득 속도는 너무나 기대보다도 느렸고 저는 부족하고  막연했던 언어 실력에  늘 저 자신에게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보다는 내일은 반드시 나아질거야!  « 라고 스스로 위로했었습니다. 나아지는 방향만을 바라보고 나는  거북이 처럼 가도 쉬지 않으면 언젠가는그 골인선에 도달할거야! 라는 위로와 격려를 제 자신에게 주었었습니다. 생각은 참으로 중요했던것 같습니다. 생각은 저의 방향을 결정했었기에  어떤 환경과 상관없이 제 생각은 제가 결정하고 각오 할수 있었던 것에 감사했습니다. 병원근무를 마치고 언어학교를 병행해서 한 2년을 다녔습니다. 그후 간호대학에서 있는 강의들을 찿아 신청하여 늘 교육을 함께 병행해서 받았었습니다.

그런 저의 선구자 같은 경험들로 노르웨이에서 새 도전과 업무를 시작하는 다른 다라 동료들이나 간호사들에게 저의 경험을 나누며 격려하고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일이나 지식을 나누는 일은 저를 더 행복하게 해주는 일들인듯합니다.

노르웨이 병원 업무의 언어 책을 만들고 싶은 소망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언어와 업무 실질적인 지식을 병행해 노르웨이 병원 실무 업무 언어 및 지식 책자를 노르웨이어를 통역한 한국어 책자를 만들고 싶은 소망이 있습니다.

2003년 부터 지금 까지 거의 그렇게 해 온 결과로 2014년 말에 석사를 졸업할수가 있었습니다. 노르웨이 간호사들의 교육에 대한 열의는 한국보다는 좀 떨어진다고 생각됩니다. 또한 병원에서의 권유 또한 전혀 없는 분위기여서 자신이 스스로 학습하며 대비하지 않으면 지식의 발전에서는 낙후되는 경우가 맣다고 생각됩니다.

노르웨이의 교육을 받으며 한국의 간호 경향과 정보들은 제게는 또다른 자원들이 되었습니다. 왜냐면 한국간호는 새계의 선두주자가 되어 갔기 때문에 한국간호 정치나 뉴스들은 제게는 항상 긍정적인 긴장감과 글로벌 센스를 채울수 있었던 계기였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는 박기남간호사 라기 보다는 한 한국간호사다! 라는 생각과 각오가 들었습니다. 나는 나는 한국을 대표하는 한국의 간호사다! 라는 생각은 노르웨이에서 근무하는 첫번째 한국간호사였기 때문인듯 합니다.  첫번째 노르웨이 진출 간호사중에 첫번째 취업자가 되었던 저는 특출나서도 절대 아니고 언어를 잘해서도 전혀 아니고 기도와 긍정적인 마인드 였던것 같습니다. 인터뷰장에서 저에게 질문을 주시는 4분의 노르웨이리더분들속에서 떨리던 무릎을 잡고 무슨 질문인지 조차 이해를 못했을때 담대히  말씀드린것은 « 하나님께서 저를 간호사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사람들을 도와주는것을 좋아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무슨 질문을 하시었는지 솔직히 이해를 못합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기회가 필요합니다. 그 기회를 주시면 전 최선을 다할것입니다« 이렇게 인터뷰는 끝났고 합격하여 저는 첫번째 한국간호사 이민 취업자가 되는 은혜를 주셨던 순간이 생각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일년을 시데랄라 처럼 최선을 다했었습니다. 선배도 없고 한국간호사도 하나도 없었기에 제가 하는것이 맞는 행동인지 틀린 행동인지도 알수가 없었기에 그바랄수 있었던 의지 할수 있었던 것이 0프로였기에 저 환자를 사랑으로 간호하고 진솔되게 간호사로 일하는것을 기준으로 삼고 늘 다음날의 업무 계획을 준비는 셀프계획, 셀프교육, 셀프지침서등등을 고안해 나가면서 근무를 했습니다. 간호대학교 근처로 이사를  가야겠다는 생각이 어느날 문뜩 들었었습니다. 그래서 일년후  현제 근무하는 노인병원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그전 첫 병원의 수간호사는 저와 마지막 인사하는 날에 눈물을 흘리시면서 제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기남! 너는 나이팅게일 같은 간호사였어! 너는 너무나 많은 섬김을 보여주었단다!» 이 말씀을 들으면서 언어를 이해 못해 환자, 보호자, 동료들에게 더 잘해드리지 못한 제가 한국에 먹칠을 하는 한국간호사는 아니었구나! 라는 안도와 감사를 드린날이었습니다. 진실은 어느 나라든지 통하는구나! 이것이 제게 무기가 되어주었습니다. 그렇게 하루 종일 눈물을 흘리며 마지막날을 근무했고 동료들도 울고 환자들도 울고 보호자들도 울었던 그 마지막 날은 아름다운 추억의 한장이 되었습니다.

 

 

 

노르웨이의 경험들

한국간호사의 첫  취업이민자

한국의 모 대학병원의 수간호사로 재직중에 북유럽 노르웨이에서 간호사부족으로 인해 한국간호사로서 노르웨이 간호사 취업이민 1세대로  2003년 5월에 10살의 아들과 남편과 함께 이민을 오게 되었습니다.  뷰스케르드 베스트폴드 간호대학교에서 만든 외국 간호사 취업 프로잭트에 신청해서 오게 되었습니다.

그때만해도 한국에서는 너무나 낫선 북유럽의 노르웨이에 대한 정보가 너무나 적었었고 특히 간호사의 역활과 간호문화의 일반적인 정보는 거의 없었기에 막막한 새 사막 같은 땅의  도전해야할 도전들에 대해서는 저는 감도 잡을수 조차 없었습니다. 저와 남편의 목표는 «가족의 질적인 삶»이었습니다. 한국에서 남편도 소장이었고 저도 수간호사였으므로 둘다 만족스런 직장과 경제적인 면에서도 여유가 있었으나 10살되어가는 아들과는 맛벌리를 하는 부부의 문제인 자녀와 거의 시간을 낼수 없는  문제였습니다. 늘 한 지붕아래에서 에서 살수 없었고 일주일이나 이주에 한번 만나고 모이는 생활이 너무나 슬펐고 그러던중 노르웨이는 삶의 질이 높고 가정적인 문화라는  내용들을 인터넷에서 읽으면서 사실 저보다도 남편이 서류등 다 준비를 했었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낫선 나라에서 새로운 언어를 배워 간호사로 일을 해야한다는 막연한 두려움은 어쩔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생전 처음해보는 큰 도전들과 한국의 형제 자매 부모님, 가족을 떠나  한국의 지구 반대편의 땅에 간다는 것은 말로 표현 못하는 슬픔이었기도 했습니다. 평소에 교회를 다니지 않던 저와 남편은 아무것도 모르는 새땅에 가서 할 첫번째 목표는 «일요일에 우리 가족 함께 다 교회에 가자! »였습니다. 왠지 이 각오가 든든했고 저흰 이민 가방 두개만 가지고 그렇게 한국을 떠나 16시간을 하늘을 건너서 노르웨이 땅에 도착했습니다. 일주일중에 6일간을 견딜수 있었던 힘은 일요일에 교회를 가는 기쁨과 그곳에서 채워지는 에너지였습니다. 12년이 되어가는 지금 저희 아들은 22살이 되었고 저희는 그간 도전해내온 것들을 말할수 있으며 너무나 서로를 격려하고 자랑스러워 합니다.

2003년 5월 31일 노르웨이 땅을 처음 밟았을때 외국을 처음 나온 저로써는 한국과는 너무나 다른 나라 모습에 두렵고 놀랬으나 그러나 저는 이 새 나라가 낫설지는 않았던 첫 인상이었습니다. 더구나 10살 이었던 된 아들과 남편과 함께 가족과 우리 가족의 느낌 을 느끼며 살수 있다는것이 저희에게 이미 그 첫날에 우리의 꿈과 목표을 이룬날이었습니다.  그후 저희 가족의 꿈과 목표대로 여러 14개국 정도의 나라를 베낭 여행하며  다른 나라의 문화를 경험하는 가족 여행의  삶을  누릴수도 있었습니다.떨어져서 자란 아들에게 엄마와 아빠가 생겼고 저흰 사랑한다! 는 표현을 그간 못한 것 보다 더 넘치게 표현하며 사는 축복을 주신 땅이되었습니다.

아들도 새 말인 노르웨이어 언어를 배우며 스스로 너무나 잘 도전하고 적응해 주었고 노르웨이 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후 노르웨이에서 내어주는 최고 국가 장학금을 받아서  세계에서는 상위  15위고 영국내에서는 상위  2위인 영국에 워릭대학교 경제학과 석사를  마치었습니다. 10살에 이민을 와서 짧은 기간내에 이런 도전을 해낸 것이 노르웨이 학생신문에도 나면서 한국학생의 도전성을 알릴수 있었던것은  생각지 않은 기쁨이었습니다. 교육 사회복지가 너무나 잘 되어 있어서 아들의 교육엔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노르웨이의 언어 장벽

언어는 제 노력과 상대적으로 나아지지는 않았습니다. 언어를 무슨 뜻인지를 이해할수 도 없었던것이 한국 노르웨이어 사전도 없었고, 인터넷 사전도 없었고, 노르웨이어를 이해시킬수 있었던 한국사람도 한명도 없었기에 너무나 막염한 언어공부를 한것입니다. 노르웨이 한단어를 찿기위해 영어단어를 먼저 찿아서 한국사전으로 다시 찿아야 한단어의 뜻을 알수가 있었고 때론 이것도 맞지가 않아 이해가 잘 않될때는 막연했었지만 그런 시간들도 다 쌓여서 지금이 있는것 갔습니다. 노르웨이어를 노르웨이 사람에게 배운 그 수업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막연했던것 같습니다. 이제는  그때 몰랐던 그 단어들을 보면서 웃을수 있는 추억이 되었습니다.

영어도 잘 모르는 저는 영어를 쓰는 나라가 아니고 노르웨이어를 쓴다는 말에 매력을 느꼈고 도전심이 생겼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시작한 언어공부에서 천부적으로 언어력이 약한  저의 언어 습득 속도는 너무나 기대보다도 느렸고 저는 부족하고  막연했던 언어 실력에  늘 저 자신에게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보다는 내일은 반드시 나아질거야!  « 라고 스스로 위로했었습니다. 나아지는 방향만을 바라보고 나는  거북이 처럼 가도 쉬지 않으면 언젠가는그 골인선에 도달할거야! 라는 위로와 격려를 제 자신에게 주었었습니다. 생각은 참으로 중요했던것 같습니다. 생각은 저의 방향을 결정했었기에  어떤 환경과 상관없이 제 생각은 제가 결정하고 각오 할수 있었던 것에 감사했습니다. 병원근무를 마치고 언어학교를 병행해서 한 2년을 다녔습니다. 그후 간호대학에서 있는 강의들을 찿아 신청하여 늘 교육을 함께 병행해서 받았었습니다.

그런 저의 선구자 같은 경험들로 노르웨이에서 새 도전과 업무를 시작하는 다른 다라 동료들이나 간호사들에게 저의 경험을 나누며 격려하고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일이나 지식을 나누는 일은 저를 더 행복하게 해주는 일들인듯합니다.

노르웨이 병원 업무의 언어 책을 만들고 싶은 소망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언어와 업무 실질적인 지식을 병행해 노르웨이 병원 실무 업무 언어 및 지식 책자를 노르웨이어를 통역한 한국어 책자를 만들고 싶은 소망이 있습니다.

2003년 부터 지금 까지 거의 그렇게 해 온 결과로 2014년 말에 석사를 졸업할수가 있었습니다. 노르웨이 간호사들의 교육에 대한 열의는 한국보다는 좀 떨어진다고 생각됩니다. 또한 병원에서의 권유 또한 전혀 없는 분위기여서 자신이 스스로 학습하며 대비하지 않으면 지식의 발전에서는 낙후되는 경우가 맣다고 생각됩니다.

노르웨이의 교육을 받으며 한국의 간호 경향과 정보들은 제게는 또다른 자원들이 되었습니다. 왜냐면 한국간호는 새계의 선두주자가 되어 갔기 때문에 한국간호 정치나 뉴스들은 제게는 항상 긍정적인 긴장감과 글로벌 센스를 채울수 있었던 계기였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는 박기남간호사 라기 보다는 한 한국간호사다! 라는 생각과 각오가 들었습니다. 나는 나는 한국을 대표하는 한국의 간호사다! 라는 생각은 노르웨이에서 근무하는 첫번째 한국간호사였기 때문인듯 합니다.  첫번째 노르웨이 진출 간호사중에 첫번째 취업자가 되었던 저는 특출나서도 절대 아니고 언어를 잘해서도 전혀 아니고 기도와 긍정적인 마인드 였던것 같습니다. 인터뷰장에서 저에게 질문을 주시는 4분의 노르웨이리더분들속에서 떨리던 무릎을 잡고 무슨 질문인지 조차 이해를 못했을때 담대히  말씀드린것은 « 하나님께서 저를 간호사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사람들을 도와주는것을 좋아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무슨 질문을 하시었는지 솔직히 이해를 못합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기회가 필요합니다. 그 기회를 주시면 전 최선을 다할것입니다« 이렇게 인터뷰는 끝났고 합격하여 저는 첫번째 한국간호사 이민 취업자가 되는 은혜를 주셨던 순간이 생각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일년을 시데랄라 처럼 최선을 다했었습니다. 선배도 없고 한국간호사도 하나도 없었기에 제가 하는것이 맞는 행동인지 틀린 행동인지도 알수가 없었기에 그바랄수 있었던 의지 할수 있었던 것이 0프로였기에 저 환자를 사랑으로 간호하고 진솔되게 간호사로 일하는것을 기준으로 삼고 늘 다음날의 업무 계획을 준비는 셀프계획, 셀프교육, 셀프지침서등등을 고안해 나가면서 근무를 했습니다. 간호대학교 근처로 이사를  가야겠다는 생각이 어느날 문뜩 들었었습니다. 그래서 일년후  현제 근무하는 노인병원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그전 첫 병원의 수간호사는 저와 마지막 인사하는 날에 눈물을 흘리시면서 제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기남! 너는 나이팅게일 같은 간호사였어! 너는 너무나 많은 섬김을 보여주었단다!» 이 말씀을 들으면서 언어를 이해 못해 환자, 보호자, 동료들에게 더 잘해드리지 못한 제가 한국에 먹칠을 하는 한국간호사는 아니었구나! 라는 안도와 감사를 드린날이었습니다. 진실은 어느 나라든지 통하는구나! 이것이 제게 무기가 되어주었습니다. 그렇게 하루 종일 눈물을 흘리며 마지막날을 근무했고 동료들도 울고 환자들도 울고 보호자들도 울었던 그 마지막 날은 아름다운 추억의 한장이 되었습니다.

 

교육 환경을 위한 병원이동

그후 저를 노르웨이간호사 자격증을 따기 위한 노인병원 실습기간중에  저의 실습담당간호사이셨던 천사 같은 엘리자벳 간호사님이 실습을 마친후 헤어진 저를 그후 1년이 지난 어느날 저를 찿아 카드를 주셨고 저는 그분의 추천으로 지금의 병원에 근무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병원은 제가 처음 언어수업과 간호사 자젹증취득 과정을 한 뷰스케루드 베스트폴드 간호대학교 근처에 있었습니다.

언제나 항상 벙어리 같았던 저를 칭찬해주시고 격려해주시고 믿어주시며 노르웨이 간호사가 될수 있게 기회를 주신엄마 같으셨던 엘리자벳 간호사님!

이분에게 받은 사랑을 노르웨이에 다시 되돌려주고 갚기엔 아직도 너무나 멀었습니다. 너무나 많은 사랑을 환자와 동료와 보호자들에게 그리고 제게도 주신 롤모델이십니다. 그분은 살아 있는 천사 같으신 최고의 간호스승이셨습니다.

동료들에게도 너무나 많은 사랑을 받았고 배웠습니다. 노르웨이 사람들은 거의 착해서 인간적인 갈등등은 거의 없었고  칭찬을 하는 삶과 업무 문화여서 저도                              

칭찬하는것을 배울수 있었습니다. 기다려주는 문화여서 스트레스도 외부에서주는 스트레스는 거의 없었습니다. 이런 선한 업무 환경이 제겐 너무나 큰 도움이 되었고 정착할수 있었던 큰 조건이 되었었습니다.

소망과 꿈을 언제나 다 예비하시고 준비해주식고 또한 이루기 까지 해 주시는 경이로운 하나님을 하나님을 전혀 몰랐던 저에게 그렇게 하나님은 더욱더하나씩 가르쳐주시고 체험시켜 주시기 시작했습니다.

 

 

 

한국노인간호사회의의 간호사들의 노르웨이 노인사회복지 시스템 및 노인병원 연수 및 뷰스케루드 베스트폴드 대학교 방문과 교수님의 강의시에  통역

한국노인간호사협회팀들의 노르웨이 병원 방문기사,  노인학과 시그나 교수님의 이론 강의 및 노인병원 연수지 방문 주선과 통역

스톡께 노인병원 방문시 한국간호사들도노르웨이 간호사들도눈물을 흘렸습니다. 우린 간호사다! 라는그 공통된 정체성을느끼며  서로들에게환자들을 위해 더욱더노력하자는 격려를 주고 받았던 감동스런연수였습니다.

 

인드레 하븐

 

 

 

국제사회봉사 (WSS)

SPONSOR A NURSING STUDENT IN MALAWI

AND CHANGE A PERSON’S LIFE FOREVER

아프리카 말라위 대양간호대학 학생 후원 사업

세계에서 인구비율대 의료인의 숫자가 가장 낮고 의료혜택이 가장 열악한 나라; 말라위, 대양간호대학생을 후원하여 간호인재를 키우고 더나아가 세계 인류건강증진에 기여합시다.

아프리카 말라위에 있는 대양병원 (Daeyang Luke Hospital)은 한국의 한 독지가의 도움으로 2008년에 세워졌으며 이후 간호인재 양성의 절대적 필요성을 절감하여 대양간호대학(DaeYang College of Nursing :DCN) 이 2011년도에 설립되었다.

 

 

 

 

 

 

 

 

 

 

대양간호대학생 후원 프로그램

학생 한명당 4년간 소요되는 비용 $9,600

 

 

매달 지불이 번거로우면 6개월치, 1년치 또는 4년치 일시불 지원도 가능합니다.

후원을 원하시는 분은 후원자 양식서를 작성하신 후 아래 주소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Address: OKNA; 17211 Valley View Ave, Cerritos, CA 90703

 

세금공제 혜택도 받을 수있습니다.

 

 

씨를 심는 마음으로…..

 

6.25전쟁후 희망이 전혀없었던 우리나라에 오신 선교사님들의 삶을 회고해봅니다.

그 옛날 우리나라에 오셨던 선교사님들의 가족묘에 전염병으로 죽은 어린자녀들을 생각하면, 모든 것을 감수하고 고국을 떠나 언어, 문화등이 다르고 힘든 우리나라에 삶의 터전을 시작하신 선교사님들의 생명을 사랑하는 귀한 사명감에 고개가 숙여집니다. 

그분들의 생명사랑으로 전혀 소망이 없어보이는 우리나라에 문을 두드리며 소망을 갖고씨를 심으신 것이 잘 자라 열매 맺는 커다란 나무가 되었지요.

지금 우리는 그 선교사들이 맺은 열매의 씨를 말라위에 심었고, 누군가 우리의 뒤를 이어 또다른 생명의 씨를 심겠지요.

우리는 이제 이 모아진 마음을 희망없는 젋은이들에게 삶의 새로운 기회를 주려고 4년동안의 긴 여행을 함께 가고저 합니다.

4년후에 교육의 씨가 잘 자라 젊은 간호사들이 병원의 닫힌 문을 열고 나오리라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우리나라도 생명을 사랑하는 미국의 뜻있는 선교사들의 정성으로 이화,배화, 배재, 세브란스등 명문의 사립대학이 세워져 교육을 통해서 경제발전의 초석이 된 것처럼 , 이제는 우리도 받는 문화에서 나눔과 돌봄의 삶으로 변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나눔의 구체적인 실천으로 재외간호사협회를 통하여 말라위에 세워진 대양간호대학 학생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준다면 , 그들의 삶에 귀한 전환점을 부여하게되고, 우리도 한 학생을 키운다는 심정으로 열매 맺는 과정에 동참하여 함께 보람을 느낄수 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인생을 마친뒤에 남는 것은 당신이 모은 것이 아니라 당신이 뿌린 것입니다” – by. 와타나베 가즈코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

삶이 아름다웠냐고 물을 겁니다

그때 기쁘게 대답할 수 있도록

내 삶의 날들을 기쁨으로 

아름답게 가꿔야겠습니다.

ㅡ윤동주